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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역사

호은이가 정리하는 북유럽 역사 ! 


바이킹 시대 AD 800

  바이킹이 항해를 통해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를 바이킹 시대라 불렀고 이 시절 스칸디나비아를 지칭하는 말로는 "Kvenland", "Cwenland", "Kænland" 등이 있었다. 아이슬란드를 첫 번째 식민지로 삼고 멀리 북미 대륙으로 진출하는 바이킹이 등장하기도 하였고 그들의 영향은 멀리 퍼져나갔다. 바이킹의 침략은 덴마크 지역에 가톨릭이 다른 지역보다 한 두 세기 정도 일찍 유입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바이킹 시대는 AD 1200, 13세기 말까지 번영을 누리다 14세기에 자취를 감추는데 이러한 멸망에는 많은 추측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현재, 지구가 한대기로 진입하여 멸망했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바이킹 시대가 끝나며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중세의 역사시대로 들어서며 유럽사의 한 축을 작용하게 된다.

칼마 동맹 Kalmar Union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은 1697년에서 1520년까지 '칼마 동맹'이라는 3국 동맹을 한다. 그들은 서북방향으로 세력 확장을 시작한 독일의 세력을 발틱해에서 막기 위해 동맹을 체결했지만 1430년 스웨덴은 덴마크 마가렛 왕조의 독선적 통치에 불만을 토로했고 1523년 동맹은 파기되었다. 불만은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는데 1520년 덴마크 Christian 2세의 스웨덴 침공은 스톡홀름 대학살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1523년 덴마크의 철수로 Gustav Vasa가 스웨덴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노르웨이는 1814년까지 Oldenburg 왕조 아래 덴마크-노르웨이 동맹에 남았다. 
  일시적인 동맹이었지만 이는 독일의 세력 확장을 저지했고 북유럽 국가 간 동맹의 필요성과 효과를 입증해냈다. 또한 이를 통해 근대 스칸디나비즘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30년 전쟁

  초기 독일 내의 종교적, 정치적 대립에서 출발한 30년 전쟁은 네덜란드 독립전쟁과 얽혀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의 개입을 불러일으켰다. 전 유럽 국가들이 관여한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합스부르그가의 패배로 끝이 났으며 신성 로마 황제의 지위가 명목적인 존재로 남는 데에 기여했다. 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는 라인강 왼쪽의 영토를 획득하여 합스부르그가의 세력을 후퇴시킬 수 있었다. 


  프랑스, 스웨덴이 제국의회의 출석권을 얻은 것은 외국 세력이 독일에 대해 정치적 간섭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독일 내 전장이 된 지역 인구의 30~90%를 잃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스웨덴의 영토 확장과 The Great Northern War

  30년 전쟁과 비슷한 시기의 스웨덴은 Charles 9세 아래 Ingrian War, Northern Wars, Scanian War 등의 전쟁을 통해 영토 확장을 시도하며 발틱해의 패권자로 자리잡게 된다. 스웨덴의 독주를 저지하고자 했던 The Great Northern War(1700-1721)은 스웨덴의 패전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스웨덴의 영토였던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일부 지역이 러시아로 흡수되었다. 그 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의 국가는 노르웨이에 존속되었고 노르웨이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의 일원으로 남았다. 이 시기의 북유럽 제국들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화 정책을 같이 펼쳤으며 북미 대륙의 덴마크와 스웨덴의 자치 식민지를 두기도 하였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나폴레옹 전쟁은 스칸디나비아를 편가르는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는 첫 번째 Battle of Copenhagen(1801) 이후 1807년 재침공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대부분의 군사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 동맹으로 가담한다. 그 후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은 Battle of Zealand, Battle of Lyngør, Battle of Anholt 등의 해전을 치르며 Gunboat War을 시도하였으나 Heligoland를 영국에 양도하게 된다.

Treaty of Kiel(1814)

  키엘 조약은 스웨덴과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간의 조약으로,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굴복하였고 덴마크는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곳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노르웨이는 덴마크와의 연합에서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Christian Frederik이 하야하고 스웨덴의 국왕을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인정하였다.

The First World War

  세계 제 1차 대전 중 스칸디나비아 3국은 중립을 고수하였지만 영국의 독일 봉쇄정책에 따라 전쟁의 영향을 피하지는 못했다. 노르웨이는 큰 수송단을 보유하고 있어 영국에 물자를 공급했는데 독일의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덴마크는 광산지역인 Øresund 지역이 독일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남부 Jutland 지역의 일부 소수 민족은 독일군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The Second World War

  독일은 노르웨이의 부동항을 갖기 원했고 덴마크는 다음 목표였으며 1940년 9월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동시에 침공한다. 
  덴마크는 침공 2시간 후 오직 16명의 전사자를 내며 항복하는 반면 노르웨이는 끝까지 저항한다. 연합군이 지원했음에도 1940년 10월 국왕 Haakon 7세와 내각은 영국으로 망명하고 노르웨이군은 항복을 선언한다. 스웨덴 정부는 언론을 설득하여 나치에 관한 비판 기사를 없애고 1943년까지 나치에게로 오가는 모든 물자에 대해 영토 내 통행을 허가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독일의 침공을 피해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 측에도 물자를 공급하기도 하였으며 덴마크에서 피신한 유대인들에게 망명을 허용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중립국의 표명으로도 국가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국은 Scandinavian Defense Union, 스칸디나비아 방위 연맹 설립에 동의하고 국가의 유지와 정책과는 별개로 3국에 대한 침공이나 외부 공격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로 하였다. 한편 미국과 소비에트 연맹과의 냉전과 그에 따른 NATO(Bordic Atlatic Treaty Organization)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국민투표를 한 결과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NATO에 가입하고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남았다.
  1952년 북유럽 국가들은 북구 국가 연합(Nordic Council)을 설립하고 2년 후에 북구 여행 자유 국가 연합(Nordic Passport Union)을 설립한다. 1972년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처음으로 EU의 전신인 유럽 경제 위원회(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가입하였고 1년 후에는 스웨덴도 가입하게 된다. 

Reference

  • www.nordikhus.com
  • BYU History of Scandinavia
  • History of Sweden, Wikipedia
  • Elise Charlotte Otté – Scandinavian History 1874
  • Derry, T.K. A History of Scandinavia: Norway, Sweden, Denmark, Finland, Icelan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79. ISBN 0-8166-3799-7.
  • H. Arnold Barton, Scandinavia in the Revolutionary Era 1760–1815,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ISBN 0-8166-1392-3
  • Ziemke, Earl F. (2000) [1960]. “The German Decision to Invade Norway and Denmark”. Command Decisions. CMH PUb 70-7. Retrieved 2 Jul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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