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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된 스칸디나비아어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

  스칸디나비아어의 각 언어들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갖가지 변화를 겪었다. 사용빈도가 많은 소수의 핵심적 어휘는 형태와 의미를 고수해 왔으나 기타 어휘는 소속언어 자체 내에서 각기 색다른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와 같은 언어분화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반세기 전부터 구체적 노력을 해오고 있다.



자매어 교육

  자매어 교육은 학교에서만 아니라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연극을 통해서도 실시할 수 있어서 스웨덴 국영방송에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프로그램을 방송할 때 이를 번역하지 않고 원어대로 내보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미 1950년대에 북구 제국간에는 여권제도가 폐지되어 이웃나라 주민 접촉이 원활해짐으로써 언어소통의 기회도 훨씬 많아졌다. 

철자법

  북유럽에도 부분적 문자개혁이 있었다. 맨 먼저 스웨덴에서는 인쇄기술의 도입과 함께 a+o, a+e, o+e 대신에 각각 å, ä, ö 같은 새 글자를 쓰기 시작하였다(1495-1526). 노르웨이에서도 aa 대신에 å자를 제정하였고(1917) 덴마크에서도 1948년부터 같은 글자 를 채용하였다. 그 외에도 덴마크 교육부에서는 1948년부터 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던 것을 폐지하고 종전의 kunde, skulde, vilde 대신에 kunne, skulle, ville 로 쓰기로 철자법을 일부 개정하였는데, 동기는 물론 이웃 스칸디나비아 자매어의 상황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라고 당시의 Hartvig Frisch 장관은 발표하였다.
  또한 덴마크어의 새 알파벳 å의 배열 순서는 처음에는 맨 앞에 내세웠다가 노르웨이가 이 글자를 맨끝에 배열하니(1917) 덴마크도 1955년부터 노르웨이어에 맞추어 맨 뒤로 보냈다. 스웨덴어는 이미 1526년부터 å를 지금과 같이 알파벳의 맨 끝에서 세 번째 자리에 놓았다.
  스칸디나비아어의 동질성 제고의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또 다른 조치는 덴마크어가 종전의 ‘avind', 'gulv', 'dukke'를 각각 ’avund', 'golv', 'dokke'로 바꾸고 ‘dauv', 'naud’, 'eid'를 단모음형인 ‘döv’ ‘nöd' 'ed’로 바꾼 것은 스웨덴어 철자법과 유사성을 추구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스웨덴어 철자법 개정(1906)에서는 'godt', kalladt'를 ‘god','kallat'로 ’hvar', 'hvem'을 ‘var', 'vem'으로 고쳐 이른바 묵음 자음을 철자법으로부터 제거하였고 ’af','öfver'를 ‘av','över'로 적어 [v]소리는 일관되게 v자로 적어서 종전의 f 또는 fv로 적던 것을 단일화 하였다. 그런데 이 개혁 조치는  이웃 자매어의 철자법과 오히려 더 동떨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와 반 스칸디나비아어적 언어정책이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동사의 복수어미

  옛 스웨덴어는 주어가 복수 일 때 이를 받는 동사에는 복수어미를 붙였다. 약변화 동사에서는 현재형일 때 어미 -a를, 강변화 동사 에서는 현재형과 과거형에 모두 어미-o를 붙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서사언어 체계에 변화가 일어나 동사의 복수어미가 사라지기 시작하여 동사어미의 굴곡이 단일화 되었고 1966년에는 관공서의 문어체도 이를 수용하였다. 이것 역시 스칸디나비아어의 통일성을 지향하는 변화로 노르웨이어와 덴마크도 같은 노선을 택하였다. 노르웨이에서는 점진적 변화단계를 거쳐 1891-1892년에 관공서 언어에까지 정착되었고, 덴마크에서는 1900년에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 1913년에 정부차원에서 동사의 복수어미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스칸디나비아어 사무국 Nordiska språksekretariatet

  중세 말부터 1800년대 초까지 북유럽은 덴마크어권과 스웨덴어권이 지배하였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노르웨이가 덴마크어의 지배에서 점차 벗어나 2개의 노르웨이 문어체를 발전시켜 나갔다. 핀란드어는 국민 대다수의 구어인 동시에 스웨덴어와 함께 공용어로 장착하였다. 또한 그린란드어와 라프어는 1900년대에 와서 비로소 독자적 위치에서 현대문화의 도구로 제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칸디나비아어의 분화 조짐이 날로 심화되어가자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관심이 제고되었고 이런 추세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이 협력하여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기들을 방어하고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스칸디나비즘 운동이 한창이던 1800년대에 왕성하였다. 먼저 1869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스칸디나비아어 정서법 회의’에서 철자법의 일치성을 도모하는 문제가 토의되었는데 그 결과는 추후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의 철자법을 조정, 개정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특히 1800년대 후반에 스칸디나비아 각국의 학교에서는 모국어(국어) 교육차원에서 이웃의 자매어도 함께 가르쳐 스칸디나비아어 상호간의 언어적 연대성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도 하였다.
  스칸디나비즘이 퇴조하면서 스칸디나비아어 상호간의 협력에 관한 열의도 한때 식었다가 1930년대 북유럽협의체의 주도로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곧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협력관계는 중단되었고 1944년 스웨덴이 맨 먼저 ‘스웨덴어 순화위원회 Nämnden för svenskspråkvård’를 구성하고 뒤에 ‘스웨덴 국어위원회(Svenskaspråknämnden’(1947)로 명칭을 바꾸었다. 동위원회 임무는 일차적으로 스웨덴어 순화운동에 있지만 동시에 스칸디나비아어 동질성 유지 및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규약에 명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뒤를 이어 노르웨이(1951)와 덴마크(1955)도 각기 국어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핀란드에서도 핀란드-스웨덴어 특별위원회가 결성되었다(1942).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북유럽 제국의 공동보조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고 제도화 하였다. 그중에서도 1952년에 창설된 ‘북유럽협의회(Nordiska rådet)'의 적극적 주선으로 1960대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스칸디나비아어 상호간의 협력문제를 논의하였다. 주요 심의 내용은 우편, 항공, TV, 전화, 기상예보, 관광분야에 사용되는 용어 통일, 스칸디나비아 각국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표기법, 스칸디나비아어와 여타 게르만어 사전관련 문제 등이었다. 또한 각국의 국어 정책에서 항상 ’스칸디나비아어 정신‘을 반영하여 이를 제도화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각국 정부에서는 스칸디나비아어 위원회를 설치하여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의 문어체를 체계적인 방법으로 접근시킬 방안을 연구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스칸디나비아어제국은 1973년 ‘스칸디나비아어 사무국’을 설치하기로 합의를 보고 1978년 7월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위에서 거론된 스칸디나비아어의 동질성 유지와 상호 이해도 증진을 위한 구체적 사업을 착실히 진행해 가고 있다.




나의 생각

  정부 차원에서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대입하여 볼 때 분단국가라는 현실 하에 통일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통일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 필요한 무언가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정책들을 통해 금전적인 부분을 넘어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2017년 작성했던 "북한이탈주민과의 상호작용이 청소년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XD

변광수. (2004). 스칸디나비아어의 분기와 동질성. 한국언어학회 학술대회지, , 11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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